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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9.07.27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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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양조장 모습

 

아우 보래. 이사람 한 평생이러쿵 살아도저러쿵 살아도시큰둥 하구나. 누군 왜, 살아 사는 건가.

그렁 저렁그저 살믄 오늘 같이 기계(杞溪)장도 서고, 허연 산뿌리 타고 내려와 아우님도 만나잖는가. 베앙 그렁가 잉 이 사람아.

누군 왜 살아 사는 건가. 그저 살믄 오늘 같은 날지게 목발 받쳐 놓고 어슬어슬한 산비알 바라보며 한잔 술로 소회도 풀잖는가. 그게 다 기막히는 기라. 다 그게 유정한기라.

 

 

영양이 낳은 민족시인 조지훈과 함께 청록파시인으로 불리는 시인 박목월(1915~1978)의 ‘기계(杞溪) 장날’ 이란 한편의 주옥같은 시(詩) 전문이다.

 

박목월의 시 기계장날을 보면 서민들의 일상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해가 뜨면 일을 하고 해가지면 일손을 놓아야 했던 암울했던 농촌지역의 현실. 오일장이 서는 바로 그날 그리운 이들을 만나 모처럼의 회포도 풀고 안부도 묻는 그 시간이 서민들에겐 일상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낙(樂)이었다.

 

이때 정을 주고받는 통로는 바로 한잔의 술, 걸쭉한 막걸리가 등장함은 당연하다.

 

요즘처럼 수많은 술이 각양각색으로 나오고, 술집도 천차만별로 이뤄진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지만 주전자로 부어마시던 그 막걸리의 힘은 서민들의 삶을 질펀하게 해준 보약같은 존재였다.

 

이런 막걸리를 국내에서 처음으로 제조한 한국양조의 태동이 바로 경북 영양이라는 것을 아는 이들은 과연 몇이나 될까.

 

맛있는 술을 만든다는 것은 그만큼 물이 좋아야 한다고 한다. 산 좋고 물 좋은 영양에서 국내 막걸리의 역사가 시작됐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를 일이다.

 

‘영양양조장’의 역사는 무려 104년. 지난해까지 운영돼 오다 경영난을 견디지 못해 문을 닫으면서 한국막걸리의 역사가 멈춰버렸다.

 

영양양조장이 다시 새로운 생명으로 호흡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영양군의 노력. 정부의 도시재생사업으로 새롭게 탈바꿈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영양군은 영양읍 동부리 일대  1,438㎡ 부지를 막걸리 제조의 전 과정을 직접 체험할 수 있고 다양한 문화상품을 전시할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시켜 영양지역 경제의 한축으로 만든다는 복안으로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특히 양조장 재생을 위해 교촌F&B(주)와 업무협약을 맺고 생산이 중단된 영양막걸리를 다시 생산하는 등 생산·관광·체험 3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복합공간으로 조성한다고 하니 기대감이 크다.

 

문향의 고장 영양이 막걸리의 고장으로도 널리 알려지면 근대문화유산으로서의 위상은 물론 국내외 관광객 유치에도 큰 호재가 될 것이 아닌가.

죽어가는 영양양조장을 되살린 영양군에 박수를 보낸다.

 

대도시의 화려한 발전을 따라잡을 수는 없지만 우리지역의 천연자원과 오래된 역사유물을 잘 가꾸어 새로운 보석으로 만드는 일은 매우 뜻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바로 영양양조장의 부활이 그러한 ‘보석가꾸기 작업’으로 봐야한다. ‘우리 것이 좋은 것’이라는 말이 허언(虛言)이 아닌 것이다.

 

영양양조장이 계획대로 추진돼 일에 지친 우리네 아버지들에게 새로운 힘을 불어넣었던 막걸리의 힘과 서민들의 낭만이 되살아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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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월(日月)칼럼〉 영양양조장의 부활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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