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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0.06.04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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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화 국장.jpg
정승화 주필/편집국장

영양군에 경사가 났다. 강산이 두 번 바뀌는 세월, 20년 동안 빛을 보지 못했던 「영양군지」가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됐다고 한다.

 

영양군에 따르면 지난 1998년 발간이후 중단됐다가 지난 2017년 6월부터 집필을 시작해 3년동안 다듬질해 마침내 영양군의 물줄기를 이었다고 하니 그 역사적 의미가 얼마나 크겠는가. 역사의 옥동자를 낳는데 산파역을 한 영양군과 집필진에게 박수를 보낸다.

 

한해농사를 짓는데도 뜻하지 않은 태풍과 홍수, 가뭄 등 세상의 도전을 넘어야 가을의 결실을 거둘 수 있는데 영양의 역사농사를 짓는 일은 그 자체가 역사의 발자국이기도 한 것이다.

 

세상이 달라져 도시 속으로 모든 문명이 빨려들고 있지만 그 근본은 농촌에 있음을 결코 부인할 수 없다. 우리네 조상들의 피땀과 혼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지금의 우리가 행복한 나날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인가. 사람이 변하고, 인심이 달라져도 흙은 변치 않고 있음이다.

 

서울과 수도권, 대구·부산 등 대도시를 휘감고 있는 휘황찬란한 네온싸인의 화려함 속에서 우린 고독을 경험하고 있다. 인간이 사라지고 인심이 사납게 변하고 있다. 자본주의와 물질문명의 편리함과 이기심이 서로 어우러져 점차 사람의 자리가 없어지고 있는 게 요즘 세상이다.

 

그런 도시에서 세상을 통찰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한다는 자체가 앞뒤가 맞지 않는 현대사회의 부조리적 단면일 것이다. 세상의 역사는 사람이 그 중심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아무리 문명이 발전한다고 해도 물질이 사람위에 선다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가뜩이나 어지러운 세상에 지구촌을 휩쓸고 있는 ‘코로나 19’의 습격으로 인간의 삶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가 사람과 사람사이를 멀어지게 하고 있다. 사람은 만나야 하고 서로 소통해야 한다.

 

그러나 코로나 시대 우린 소통자체가 금기시 되고 있다. 만날 수 없고 떨어져 생활해야 하는 시대, 이런 세상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알수 없다는 게 더욱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

 

돈과 사람이 몰린 도회지 일수록 코로나 19는 더욱 맹위를 떨친다. 사람이 많다보니 접촉빈도가 높을 수밖에 없고 그만큼 감염자도 비례해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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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군은 영양의 역사와 문화를 집대성한 영양군지를 20년 만에 재발간했다 (사진 = 영양군)

그러나 농촌은 어떤가. 물론 코로나 감염의 위험은 똑같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인구수가 적고 접촉빈도가 낮다보니 도시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코로나 감염자는 미미한 수준이다.

 

많은 인류학자들은 작금의 코로나 사태를 인류역사에 있어 큰 분수령으로 간주하고 있다. 세상은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크게 달라질 것이라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사회의 정치와 경제, 사회 각 부문들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데 이번 코로나 사태로 온전한 분야가 몇 되겠는가.

 

각 산업군별 업무형태 다변화 등 사회전반에 큰 변혁이 올 것이라는 게 인류학자들과 지성인들의 예단이다. 이 같은 큰 변화 속에 최근 농어촌지역으로 다시 회귀하려는 이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이다.

 

가뜩이나 인구 1만7천여명선 붕괴위험에 있는 영양군으로서는 이 같은 귀향, 귀농인들의 증가분위기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역사의 고장, 문향의 고장, 영양을 살리기 위해서는 인구증가가 최대 급선무인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영양의 유구한 역사를 일깨워주는 「영양군지」가 다시 도도히 흐르는 강물처럼 이어진다고 하니 현대사적 의미가 자못 크다고 생각한다.

 

육지속의 작은섬, 전국 최소 군단위 등의 오명을 벗어던지고 영양군이 유구한 역사의 고장으로 다시 세상위에 우뚝 서는 첫 걸음이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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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월(日月)칼럼] 영양군지 발간에 즈음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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