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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0.04.16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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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화 국장.jpg
정승화 영양신문 주필/편집국장

어느 시인이 말했던가.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1922년 영국시인 T.S 엘리엇(Eliot)의 시 ‘황무지’에서 말한 그 4월이 1세기가 지난 2020년 봄에 재현되는 듯하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중략』엘리엇은 ‘황무지’란 시에서 인간의 일상적 행위에 가치를 주는 믿음의 부재(不在), 생산이 없는 성(性), 정신적 메마름을 표현했다.

 

전쟁이후 서구사회의 황폐한 정신적 상황을 ‘황무지’로 형상화해 표현한 명시로 잘 알려져 있다.

 

4월의 봄은 최 정점. 생명의 봄이 왔건만 오히려 죽음의 그림자가 덧씌워진 현실. 이율배반적인 이 상황이야말로 ‘잔인함’ 외에 달리 무슨 말로 할 수 있을까.

 

일월산에도 봄은 왔다. 진달래가 차마 더 이상 붉음을 참지 못하고 일월산의 초입에서부터 빠알갛게 물들이는가 하면 계곡에는 푸르디푸른 청정수가 끝없이 흘러내리고 있다. 봄 햇살의 따사로움이야.

 

그런데 우린 봄을 만날 수 없다. 봄이 왔건만 맞이할 수 없는 이 운명.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코로나가 우리의 삶을 갏아 먹고 있는 이 잔인한 4월. 벌써 3개월째 세상은 좀비 같은 바이러스의 공격에 멈춰버렸다.

 

1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코로나에 감염됐다고 한다. 바이러스는 국경도 초월한 채 이젠 유럽과 미국 등 온 세상을 바이러스로 침공하고 있다.

 

최첨단 핵무기를 보유한들 한낱 바이러스 앞에서 속수무책인 인간의 한계를 세계는 경험하고 있다.

 

사람들의 죽음이 더 이상 새로운 뉴스가 아닌 일상이 되고 있는 잔인한 4월. 아이들은 학교에 갈 수가 없고, 어른들은 생업을 멈춰버렸다.

 

봄엔 파종을 해야 하는데 효자역할을 했던 베트남 계절노동자들의 입국길이 막혀버렸다. 죽음을 불사하고 한국에 올 수 없는 현실.

 

몇 년째 그들의 손에 의지해 농사를 지었던 연로한 노인들은 TV채널만 바라보며 언제 이 상황이 끝날지 그저 막막하게 기다릴 뿐이다.

 

세상이 온통 코로나로 막혀버렸다. 동굴 속에 갇힌 한 마리의 짐승, 최첨단 문명도, 허울 좋은 위정자들의 입발림도 코로나 앞에서는 단지 공허한 말로 들려오는 이 현실.

 

봄은 하릴없는 꽃잎과 하늬바람, 끝없는 물줄기를 내려 보내며 신호를 보내고 있지만 속절없이 그저 봄을 떠나보내야 하는 이 잔인한 4월.

 

소통의 시대가 가고 격리의 시대가 왔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야 정이 들고 세상과 이어질 수 있는데 코로나가 그 중간에 섰다. 사회적 격리는 이제 코로나 시대의 필수 트랜드가 됐다.

 

외로움은 이제 외롭지 않게 됐다. 모든 이들이 외로움에 사로잡혀 있는 일상 속에 오히려 함께 하는 이들이 적대시 되고 있다.

 

앞으로 몇 개월만 이 상황이 지속된다면 중소기업들의 80%가 문을 닫아야 된다고 한다. 밖에 나올 수 없는 시간들이 이어지다보니 문을 연 가게들은 장사가 안 돼 파리를 날리고 있다고 한다.

 

임대료를 내지 못하는 세입자들이 늘면서 건물주인들이 임대료를 받지 않거나 인하해주는 착한 임대인들도 이어지고 있다.

 

함께 만들어 가는 공동체사회에서 보여주는 아름다움이지만 언제까지 ‘착한 임대인 운동’에 기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모든 일상이 멈춰버린 4월의 봄, 그중에서도 ‘영양의 봄’을 말해주는 산나물축제마저 전격 취소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일상이 무너지고 있음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상황. 평생 흙을 파며 자연이 선물하는 봄나물을 뜯어 생활해온 산촌인들에게 올해만큼 잔인한 봄이 있었던가.

 

마스크가 없이는 문밖에도 나갈 수 없어 모든 이들이 스스로를 가두고 있다. 도회지에 나간 자식들도 혹시 코로나 전파우려 때문에 부모님을 찾아뵙는 것을 꺼리고 있다.

 

그저 서로 전화로만 안부를 묻는 풍경이 지금 이 시대 우리네 삶의 일상이 되고 있다. 이 와중에도 선거는 치렀다.

 

죽음의 그림자가 세상에 드리워진 상황에서도 위정자들은 끝없는 욕망으로 그들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정의와 진실은 사라지고 꼼수와 거짓, 위선이 판을 치고 있다.

 

바이러스 하나 퇴치하지 못하는 21세기 인간들의 졸렬한 모습. 살기 은 세상을 만든다는 그들의 구호가 바닥에 떨어져 나뒹구는 처량한 벚꽃잎처럼 색이 바랜 잔인한 4월이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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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월(日月)칼럼] 잔인한 4월의 편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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